요즘 체중계 숫자가 며칠째 그대로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멈췄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을 텐데, 문득 옷이 헐렁해진 걸 느끼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울이 보여주는 건 몸이라는 시스템의 딱 한 단면일 뿐이고, 그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지방과 근육은 무게는 비슷해도 부피가 꽤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체중계 위의 숫자가 꼼짝 안 해도, 그 안에서는 지방이 근육으로 조용히 자리를 바꾸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안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사실은 눈에 안 보이는 재배분이 이미 진행 중이었던 셈이다.
이게 꼭 나쁜 쪽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게 오히려 위안이 된다. 겉으로 멈춰 보이는 지표를 실패로 단정하고 그만두는 순간, 실은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던 좋은 변화까지 같이 끊어버리는 거니까. 식욕이 줄어드는 것도 이 재배분과 연결돼 있다는데 — 근육이 늘면 그게 다시 식욕을 조절하는 신호로 이어진다. 하나의 저류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흐름까지 조용히 건드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체중계 말고 다른 것들을 본다. 옷이 헐렁해졌는지,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덜 차는지. 눈에 잘 안 보이는 저류일수록, 관찰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야 그게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