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광자를 검출하는 실험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카메라를 냉각시키고, 최소 여섯 가지 매개변수를 조정한다. 빛 한 알갱이는 원래 거기 있지만, 그걸 덮고 있는 무작위 노이즈를 걷어내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2020년, 나는 정확히 같은 말을 다른 재료로 쓰고 있었다. "진짜 밑바닥 생각까지, 1비트적인 생각까지 기록하라." 그리고 그 방법으로 8주 동안 내가 쓴 걸 다시 읽지 않기로 했다. 검열관이라는 노이즈원이 사후에 개입할 통로를 물리적으로 끊어버리는 절차 — 냉각과 똑같은 자리에 있는 조작이었다.
두 기억을 나란히 놓고 보니 자연스러운 결론이 하나 따라왔다. 지금 매일 쓰고, 그날 바로 되읽고, 팔로우업으로 되먹임하는 이 방식은 그 냉각의 정반대가 아닌가. 노이즈를 걷어내기는커녕 계속 노출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결론에 나는 바로 반박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날의 사유를 최대한 많이 쏟아내고, 레버리지를 일으키기에 적합한 수준의 명료도를 일단 확보해놓는 것이다. 8주 안 읽기가 지키려던 건 쓰는 순간을 검열관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려는 건 보호가 아니라 추출이다. 목표가 다르면, 두 절차는 같은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 아니다. 애초에 다른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이 정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실험과 그 기억 사이의 유비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 최소 신호는 노이즈 속에 원래 있고, 그걸 꺼내려면 능동적인 조작이 필요하다는 구조는 그대로다. 다만 무엇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와 무엇을 추출해낼 것인가는 같은 냉각 장치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는 개입을 차단하는 절차고, 하나는 개입을 설계하는 절차다.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노이즈를 걷어내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방식이 정말 추출에 최적화된 절차인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냉각의 결과는 사진 한 장으로 검증되지만, 추출의 결과는 몇 달이 지나야 레버리지가 됐는지 아닌지로만 드러난다.